가짜와 진짜
Truth and Falsehood
이상원 저 ‘아들 딸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키우세요 그리고 인성교육은 이렇게‘ 양서각 출간에서 퍼온 글’
생전 처음 2개월 동안 저의 집사람과 저는 긴 고국 여행을 했다.
거기서 부랄 친구 하나를 만나 1주 동안 같이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함께 다닌 동기 동창생이고 죽마지우이었다.
몸집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육체 체형에다 미남이다.
학교 다닐 때 “예수를 믿는 아이”로 잘 알려졌다.
말수가 적고 선의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학교 수업료도 제 때 꼬박꼬박 잘 내고 교칙에 따라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학교에 다녔다.
교모를 삐딱하게 쓰고 다니는 것을 본적도 없고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걸을 때는 두 어깨를 활짝 펴고 앞을 똑바로 바라다보면서 걷는 친구였다.
공책 한 장도 한구석도 낭비하지 않고 썼고 연필 자루기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깎아 쓰는 검소한 친구였다.
그의 학교 성적은 반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었다.
물론 또래들이나 같은 반 학생들의 마음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말수도 아끼고 품행방정하고 모범생이었다.
교실 청소 당번 날이 돌아오면 청소 당번을 맡은 다른 학생들은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치더라도 그 친구는 혼자서 큰 교실을 다 청소 해놓고 방과 후 늦게 집에 가곤했다.
남을 헐뜯지도 않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그였다.
그는 그의 부모님들과 가족 어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형제자매들과 우애가 돈독하다는 말도 들었다.
인사성이 빠르고 좋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동네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를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또래들에게 어쩐지 그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점잖고 정직한 어르신 같았다.
나도 그를 그때도 지금도 좋아했다.
고교 졸업 후 45년 만에 그를 고국에서 만나 그와 같이 안사람과 충남 청양 칠갑산에서 한국 여행을 시작했다.
그 다음 날은 고도 부여로 갔다.
여유 있으면서 조용히 흐르는 백마강, 말이 없이 우뚝 서있는 부소산도 구경했다.
그 다음 날은 전라북도 김제 시·익산시를 지나 만경강 하류에 있는 만경평야를 거처 차를 몰았다.
만경평야를 지나 군산시로 갈 때 톨스토이 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를 연상했다.
그다음은 해물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변산반도에 도착했다.
경치 사진을 몇 장 찍고 전주, 광주를 거쳐 목포시에 도착했다.
유달산에서 아름다운 목포시와 남해를 처음으로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
진도의 울돌목과 진도 대교, 운림삼방을 구경했다.
그 다음 해남 땅끝, 정약용 기념관, 낙안읍성 민속 마을, 지리산, 해운대에 갈 때까지 그 친구가 우리들을 안내했다.
그 다음은 버스로 포항, 경주, 동해시, 강릉, 울진, 속초, 고성, 통일 전망대, 설악산, 경기도, 서울을 지나 충남 도고온천 숙박소로 돌아오는 2주간 한국 여행을 맞췄다.
다시 그 친구와 지냈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가 입은 옷이랑, 언행은 초중고교를 다니었던 그 옛날과 별로 다른 것이 없이 검소했다.
겸허하고 검소하고 점잖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사랑스런 행동이 그에게서 물씬물씬 풍겨 나왔다. 그야말로 그는 진짜였다.
그의 두 자녀는 다 성공했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란 말이 있다는 이야기, 요즘 한국에서는 승용차를 5~6년간 타고 새 차로 바꾼다는 이야기,
동남아에 가면 비행기 내 탑승객의 90%는 한국인 여행객들이고 그중 90%는 한국여성들이란 이야기, 동남아에 여행가면 그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 중고차를 많이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 한국 중고차가 그 나라로 팔려가기 전 차에 붙였던 “명동빙수” 등 한국 선전간판을 지우지 않고 붙인 채 그 대로 중고차를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줬다.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를 삼거라라고 하고, 살충제를 너무 많이 뿌려 재배한 과일이나 채소를 먹고 자연사 한 사람이 땅 속에서 묻힌 후 썩지 않는다는 이야기, 길이 산으로 막히면 산을 뚫고, 강물로 막히면 다리를 놓아 삼천리금수강산의 총 도로용량은 독일 다음으로 세계에서 단위 면적 당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이야기, 새 도로가 짧은 기간에 건설되는 바람에 주민들도 새 도로가 언제 건설되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도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한국세상 이야기를 나에게 한 없이 설명했다.
반은 옳고 반은 틀릴 것이라고 듣고 넘겼다. 그는 사실 아는 척하지 않는 친구였다.
나는 미국에서 몇 10년 동안 살 때 보고들은 얘기로 맞장구를 치면서 우리 둘이서 동서양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 사는 것이 어때?
어려워.
왜 ?
글쎄 말이야.
요즘은 성한 사람들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
그것 있잖아. 나만 아는 세상, 부모도 형제자매도 모르고 돈만 아는 세상.
마이즘(Mysm) 말이야.
나만 알다니.
그것 있잖아.
무엇?
그것.
우리 자랄 때는 없어서 먹지 못하고 없어서 입지 못하고. 판자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 더러운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있기만 하면서 가리지 않고 할 것이 있으면 했던 그 시절.
요즘세상 먹을 것 없어 못 먹는 사람들이 어디 있니.
입에 넣기 싫어서 굶는 이들은 있지만.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집이 많아.
그런 빈집들을 나라 돈으로 부수는 일도 큰일이라네.
나도 그런 신문 기사를 읽었어.
이제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누구든지 들어가 살기를 싫어한다네.
금방 지은 새 아파트에서도 실내의 설비와 치장이 조금 맘에 들지 않으면 실내 치장 등을 전부 뜯어내고 새로 치장도 한다고.
인도네시아나 이태리 등 외국 수입 대리석, 체리 레드 마루, 목재 등 특수 건축 재료로 바꾼다고.
아닌 게 아니라 모 교수 댁에 초청되어 갔더니 그 댁의 아파트는 생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급 건축 재료로 치장했고 고급 벗 나무 마루, 호화스럽고 비싼 가구에다 벽에 걸아 놓은 TV와 납작한 컴퓨터 모니터 등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야기.
옛날 그대로 사는 것이 좋아.
나는 크레디트 카드가 무엇인지 몰라 핸드폰도 없고 차도 없어.
그런 게 왜 필요하니?
그래, 그걸 후회하니?
아니.
그럼 왜 그런 이야기를?
나도 도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꽃잎 같이 떨어져 죽었듯이 그냥 자살을 하고 죽은 지 며칠 후에 썩은 시체를 동네사람이 찾아내고 말이야!
봄이 오면 한강에 시체가 둥둥….
때로는 그의 눈에 무엇인가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전부는 그렇지 않지?
물론이지.
그때 나는 “진짜와 가짜” 이야기를 꺼냈다.
“어려서 한 동네에서 살았던 아주 친한 두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두 친구는 몇 년 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한 친구의 이름은“진짜”이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가짜”였다.
가짜는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좋고 금테 안경에 이태리 제 넥타이에 멋진 고급양복을 입고 있었다.
구찌 혁대와 구찌 구두를 신고 팔에는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의심할 나위 없는 멋진 국제 신사들 중 멋진 국제 신사였다.
그와 정 반대로 진짜는 남루하고 노란색 위 양복에 검고 푸른 줄무늬가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언제 세탁했는지 옷에서 냄새가 물씬물씬 풍겼다.
그의 양복은 몸에 맞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요새 아이들도 잘 차지 않는 플라스틱 시계,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쭈글쭈글한 구두, 파리한 얼굴은 죽도 못 먹은 듯 창백했다.
대 성공한 친구 가짜야!
자네 어떻게 그렇게 성공했니?
나중에 말하지.
근데 자네 진짜!
살기가 어떤가?
나는 잘 사러보려고 많이 노력했지.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어.
왜?
정말 어려워.
산다는 것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근데 진짜 자네 아침이나 먹었나?
먹었는지 모르겠어.
먹는 문제로 매일 전쟁터에서 전쟁하는 것 같아.
왜?
그렇게 됐어.
그럼 나를 따라와.
따라 오라니까.
가지.
오랜만에 잘 먹을 것을 생각하니…
진짜,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지금부터 나하고 같이 있는 동안 아무에게도 한마디 말도 해서는 절대로 안 돼.
한마디 말도 해선 안 된다고…
알았지.
약속할 수 있지.
시키는 대로 하지…
학교 다니던 시절 둘이서 걸어가듯이 읍내 길을 나란히 잠시 걸어 그 읍내에서 가장 좋은 최고급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태리제 크리스탈 산들러 등불 아래, 마호가니 식탁은 유난히 번쩍이고 금테두리 의자에 앉았다.
웨이터가 가짜한테 와서 반가워하면서 굽실거렸다.
그러나 진짜를 보고 왜 이렇게 따라다니느냐 핀잔을 하면서 식당 밖으로 당장에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가짜는 진짜의 팔을 끌어 의자에 앉히고 그냥 놓아둬라.
웨이터를 쳐다봤다.
물론 진짜는 한마디도 안 했다.
그 때부터 가장 맛있는 외제 포도주 이것저것 주문해서 실컷 마시고 코냑도 마셨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는 숯불구이 소갈비도 실컷 먹고 거기다가 맛있게 찐 살살 녹는 옥수수와 빵도 먹고 후식도 하고 티도 한 잔 했다.
가짜는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숨 쉴 겨를도 없이 술술 진짜에게 이야기했다.
진짜는 그야말로 듣기만 하고 한마디도 안했다.
어느새 시간은 빨리 지나 저녁때가 왔다.
그 읍내 사방에서 고급 귀관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짜는 이 기회를 잡았다.
큰소리로 웨이터!
거스름 돈 가져와
왜 거스름 돈 안 주는 거야.
또 큰소리로.
얼굴이 빨게 진 웨이터가
무슨 거스름돈을 ?
40불 어치 먹고 100불짜리를 줬지.
거스름돈 60불을 나에게 줘야지.
아니, 언제 냈어요?
이 친구 좀 봐.
사람 잡겠네.
아까 줬잖아.
안 주시고….
진짜!
야! 자네 보았지. 주는 것을!
이 애한테 본 대로 말해.
한마디 말도 않고 진짜는 눈만 껌뻑거렸다.
동네 유지들과 고급 손님들로 식당은 붐비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 한 번도 없던 큰 소리가 식당에 쩡쩡 퍼져 마치 장터 같은 분위기였다.
식당 주인도 당황했다.
이것 보세요.
40불 어치 먹고 100불을 냈으니 60불을 거슬러 주라고요.
이런 식당이 세상에 어디 있어.
너 보았지?
내가 100불짜리 돈을 내는 것을.
또 한 번 진짜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이때 역시 진짜는 한마디 말도 않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주인은 바지 뒤 주머니에서 돈 지갑을 꺼내 아무 말 없이 60불을 건넸다.
바싹바싹하는 10불짜리 6개를 또박또박 센 후 구찌지갑 속에 넣은 후 위 양복 안주머니에 지갑을 넣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깍듯이 하고 식탁에서 이쑤시개를 꺼내 이를 쑤시면서 식당을 나왔다.
진짜는 이쪽으로 가고 가짜는 다른 쪽 길로 걸어갔다.
그 후 진짜는 가짜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는 아무 말도 없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자네 알지.
요즘 그런 가짜들이 세상에 가득 해.
우리 부모들은 가짜들을 조심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해.
출처 – 그리스의 인간설화를 다른 이야기로 만든 이야기,
저자 가감 수정 번역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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