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미 소아과 전문의는 2003년 7월 커네티컷 ‘한인 이민 100 주년 선포식에서 미 커네티컷주 Korean of Year로 선정됐다.
Lee Sang-won, an American pediatrician, was selected as Connecticut’s Korean of the Year at the proclamation ceremony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Korean immigration in Connecticut in July 2003.
커네티컷 주지사 John G Rowland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미 커네티컷주 ‘한인 이민 100 주년 ‘선포식에서 받은 커네티컷 주 주지사 상장
커네티컷 한인사회의 각종 봉사활동, 신앙생활, 그리고 저서활동, 친교생활 등을 통해 수년 동안
이상원 미 소아과 전문의는 잘 알려졌다.
그는 충남 서산군 안면면 중장리 장등포에서 농부의 아들로 1936년에 태어났다.
한국 서산 타임지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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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아내에게…남편의‘사랑편지’감동
이상원 박사는 안면도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과외공부 한 번 받지 못했는데도 의사가 됐다고 했다. 안중초등학교와 홍성중ㆍ고를 거쳐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은 서산보건소 등 당시 무의촌에서 진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케네티컷 UCONN 의과대학과 예일대학 소아과 등에서 소아과학 수련을 받고 미국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커네티컷 주립의과 대학 소아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 소아 청소년들의 건강, 예방, 질병, 사랑 등에 관한 의료 진료에 종사하여 미국 TOP 소아과 전문의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진은 이 박사와 생전의 그의 부인 이춘자 여사.
서산 출신의 아내를 먼저 보낸 슬픔을 딛고 사랑을 전파하는 80대 재미교포의 ‘사랑편지’가 감동을 주고 있다. 감동의 ‘사랑편지’주인공은 소아과 의사로 바쁜 의료 활동을 하면서도 고국 국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이상원 박사. 이 박사가 지난해 11월 29일 세상을 떠난 부인에게 쓴 ‘사랑의 편지’를 본지에 보내 왔다. 그 감동의 편지내용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사랑하는 당신을 보내면서!
당신 보고 싶어. 당신 이춘자는 향년 78세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어. 이제 당신은 슬픔, 미움, 원망, 고통, 질병, 눈물,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평안히 쉬고 있겠지. 당신과 내가 살던 우리 집 안방에서 알츠하임스병과 뇌졸중으로 1년 동안 투병하다가 나의 품에 안겨 소천 했어. 그때가 2018년 12월 29일 오후 4시20분이었어.
당신은 당시 서산군 서산읍에서 1941년 11월 2일 태어났지. 숙명여고와 숙명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한국 약사 면허증을 획득했지. 대단했어.
그리고 우리는 1964년 3월 14일 결혼했고 나는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육군에 입대해 군의관으로 3년을 보냈어. 당시 방 한 칸 세집에서 살면서 당신은 고생고생하며 동형이와 건형이 두 아들을 낳았어. 나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혼자 미국으로 인턴 일을 하기위해 50불을 호주머니에 넣고 1968년에 왔고 3개월 후 당신은 그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어.
커네티컷주 주립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에서 레지던트를 하는 동안 딸 진이가 태어나면서 슬하에 2남 1녀 자녀를 두고 그들을 자비로 일류학교에 보내고 미국사회에서 건전한 자존을 갖고 생산적 일을 하는 세 자녀들로 잘 키웠지.
한국에서 사는 언니 이광식 여사, 남동생 이형록, 이형곤과 그들의 가족, 미국에 사는 엔지니어인 아들 동형, 내과의사인 건형, 비진니스 하는 딸 진이와 사위, 귀여운 손자들을 비롯한 온 가족들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남을 보고 애통했지.
나, 당신을 사랑해, 정말로 보고 싶어. 당신은 보기 드문 훌륭한 여성이고 분에 넘치고 넘치는 내 아내였어.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정직하고, 검소하고 선량한 아내였지. 거기다가 부지런하고 남들에게 정성과 공을 들여 식사를 대접하곤 했지. 미국에서 살면서 빵, 우유, 치즈, 설탕, 꿀, 화학조미료 등으로 요리하지 않고 쌀빱, 김치, 불고기, 생선, 고추장, 간장, 채소, 과일 등 건강식을 하루 3끼 식구들에게 제공했지. 당신이 요리한 음식이 최고니 외식은 거의 않고. 당신은 조건 없는 가장 좋은 사랑을 받은 아내이기도하고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엄마였지. 우리는 서로 대화를 잘하면서 애정과 동정, 용서와 인내 그리고 서로 정직하게 믿고 살았지. 나를 웃으면서 충고하고 잘못하면 용서하고 가르치는 일을 아끼지 않았어.
당신은 나의 스승이었고 인생의 동반자였어. 올바른 윤리 도덕을 덕성으로 인성으로 삼고 집안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모범을 보이면서 살았지. 나는 당신을 두말할 것 없이 영웅으로 추천하겠어. 50여 년간 의사생활을 하는 나에게 첫째로,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항상 당부했지. 그리고 골든 룰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쳤고.
당신은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한다-소아 가정간호백과, 아들딸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키우세요 리고 인성교육은 이렇게, 모유 모유수유 이유 등 10가지 육아 건강 백과 책을 저작하는데도 동참해 주었어. 타이프도 쳐주고, 교정수정도 해주고, 편집까지 맡았어. 당신이 없었으면 감히 그런 책 한권도 저작 하지 못했을 것이 뻔해. 게다가 전 세계 8천만 한인들을 위해 좋은 육아 건강에 관한 책을 저작하는데 소요되는 경비는 하나도 걱정할 것 없다고 누누이 말 했지.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미국 톱 소아과 전문의로 선정되기도 했어.
50여 년 동안 의사 노릇을 무난히 한 것도 바로 당신이 내 옆에 있기 때문이야. 내가 개업할 때 쓰던 건물을 세주고 세집 주인 노릇을 하면서 집 주위에 꽃나무들을 심고 주차장을 만들고 필요하면 집에 페인트를 칠 하는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지. 항상 내 집같이 관리하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내 식구같이 잘 보살피기도 했지. 교회에서는 집사로 헌신하고 윈디함 병원에서 약사로 잠시 동안 열심히 일을 했지.
나의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한국에서 치료 받는 중에 미국으로 모셔다 간병해드리고 아버님이 위암 수술치료를 받는 중 미국으로 모셔 간병하고 여러 시동생들, 조카들을 미국으로 이민시켜 여기서 일류대학 교육을 받게 하여 잘 살게 해주었지.
가지고 있는 약혼 다이아반지는 미국에 오기 전 팔아 그 돈을 시부모님께 드리고 뇌졸중으로 입원 치료받고 있던 시어머님을 뵙고 오라고 두 번째 사준 다이아 반지를 팔아 그 돈을 나에게 주고 마지막으로 사준 반지는 자녀에게 주어 반지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났어.
뿐만 아니라 결혼 한 후 1980년도까지 시부모와 시동생들의 생활비를 책임지고 보내 드렸고 조금씩 모은 현금을 미국에 이민 온 시누이, 남편 그리고 조카들에게 집을 사라며 건네주기도 했어. 당신이 시집 가족들에게 베푼 사랑은 저 산과 같이 높고 크고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고 깊었어. 당신은 시집 부모형제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웃으면서 도와줬지.
그러니 당신이 나에게 베푼 사랑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어. 이런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다 베풀고 하늘나라로 갔지.
당신 고마워. 당신 보고 싶어.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어.
2019년 1월 20일 남편 이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