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John Sangwon Lee, MD.,FAAP 미국 소아과 전문의, 한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John Sangwon Lee, MD.,FAAP American pediatrician, Korean pediatrician

posted in: Uncategorized | 0
이상원  (John Sangwon Lee, MD.,FAAP

미국 소아과 전문의, 한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John Sangwon Lee, MD.,FAAP

American pediatrician, Korean pediatrician

 

나는 어디서 왔나

이순 고희 산수도 지나고 구순으로 달려가는 졸생의 삶 관해  수필 한편을  부탁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올린.

1936년 10월 9일 충남 서산군  안면면(지금은 태안군 안면읍, 2009년 인구 9,775명) 중장리 장등개 27번지 부엌, 안방, 나무간  초가 3칸집에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농부 아버지 이시우와 어머니 정향섭 사이에  태어난 9 자녀들 중 장남이었다. 나의 시조는 신라 사로 건국 6 촌장 중 분이신 알평(謁平)이었다. 어머님은 고무래 정씨, 다산 정약용의 3대 후손이고 충남 홍성군 홍동면 석지기 양반집 자손이었다.

나는 왕복 2십리 학교 등하교 길을 걸어 중장초등학교를 6년동안 다니고 졸업식에서 품행 방정 학력 우수로 교장상을 1950년 받았고 홍성고등학교 졸업식날 홍성, 서산, 청양, 당진, 예산, 보령, 서천 등 충남 8개 군에서 모인 수재  500여 명 졸업생들 중 품행 방정 학력 우수해 수석 졸업 상을 충남 도지사로 부터 1957년 받았다.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다

전신이 퉁퉁붓고 가쁘게 숨 쉬면서 지병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  병명도 모른 채 의사를 번도 보지 못하고 앓다가 사망한 14세 사춘기 여동생, 그후 2년 되던 해 8세 남동생의 죽음을 본 나는 심한 사춘기 우을증에 빠젔다. 다른 가정에는 이러한 엄청난 고통이 없도록 병을 고쳐주고 죽을 병을 고쳐 살려주는  의사가 되기를 어렸을 때부터 혼자 결심했다.

거기다가 홍성고교 1년차 목 뒤에 난 호발주 고름(모낭염?)을 손으로 짜고 이명래 고약을 바른 후 고열로 하숙방에서 혼자 밤새 앓다가 아침에 이러나 1마일 거리를 혼자 기어서 홍성 도립병원에 가서 원장의 진찰을 받고 그가 갈아 아스피린(?)을 먹고 낫지 안해  외 할아버지의 소개로 한의사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때 부터 페니실린주사를 하루 한번 3개월 동안 누워 매일 맞고 이모님과 외할머니께서 나무 때서 만든 숯불로 한약을 매일 대려 나를 치료해 주셨다. 한의사도 약만 지어주고 번도 누워 있는 나를 보러오지 않았다. 사춘기에 있는 나는 죽을 날만  삼칸 초가집 방구석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패그 증후군( FAGS Syndrome-Fear 두려움, Anger 화, Guilt 죄책감, Sad 슬픔)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란 말을  의학 서적에서 읽고 배웠다. 내가 앓을때도 그 증후군이 나에게도 생겼었다. 나의 병을 치료하고 간호해 주는 외힐머니와 이모님을 비롯해  홍성 도립병원 원장도, 한의사도, 아버지도, 병문안하러 온 동네 사람들도 패그 증후군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  그 동네 서울의대 3년차 재학생이 누워 앓는 나를 병문안하러 왔지만 문진도 시진도 촉진도 타진도 청진도 않고 “죽게 생겨갔다”고 사춘기 아이 내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안면도 농가집 나의 어머님은 나 때문에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바쁜 농가 가사, 어린 자녀들 만 집에 놓고 잠시 동안도 나를 보러 오실 수 없었다. 3개월 동안 죽어 가는 고교 일년생 큰 아들을 보러 오시지도 않았다. ‘어린 자녀가 빵 달라고 하면 돌을 주는 엄마는 없다’ 는 성경 구절을 생각해본다.

홍성고등학교 20여명 선생님 한분도, 나의 홍성중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 하나도 나를 병문환 하러 오지 않았다. 카드도 하나도 보내지 안했다. 미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고 미국 Top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된 내가 이런 글을 쓸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는 아버님이 안면도에서 하루종일 배를 타고 몇십이 길을 걸어서 내가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오시더니 지게에 나를 태워 30리 길을 걸어서 광천읍 양 의사 한테 데리고 갔다. 내가 바른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고 호소하니까 바른쪽 넓적다리 관절 근방에 고름이 한 사발 정도 괴어 있다고 진단하고 두 말 할것 없이 전신 마취를 하고 고름을 당장에 빼 냈다. 마취에서 깨어보니 이쁜 처녀 간호사(?) 옷을 홀랑 벗은 고등학생 사춘기 남 환자의 고관절 부위 농양에서 나온 피고름 묻은 가제를 가라 주고 있었다. 그러나 , 수술 치료해 준 그 의사를 번도 보지 못하고 그 병원에서 3일 만에 퇴원해 안면도 부모 있는 내 집으로 3개월만에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꿈 얘기를 하는 것 같다. 1950~1960년도 내가 겪었던 의료진료과 거의 비슷한 의료 실정은  고국 한국 홍성 서산 안면도 지역에 만연하고 있었다.

막대한 등록비와 생활비를  6년간 도와 줄 수 없으니 사범대를 가 선생이 되라는 아버님의 엄한 권고를 거역하고 나는 연세대 의과 대학에 1957년에 입학했다.

그 당시 아버님은 논 20마지기, 밭 3천평, 화물선 2척, 방 다섯개가 있고 대문이 두개있는 큰 옹가집을 가진 시골  부자였다. 시도 쓰시도 이장도 하시고 동네 유지이시었다. 그러나 동생들의 초중고교 교육비 부담도 참작해 나의 학비를 다 대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자취, 책팔기, 가정교사, 상환조건 장학금 및 무의촌 장학금 등으로 6년간 의학 공부 우수한 성적으로 맞추고 의학사를 1963년에 받고 졸업했다.

그해 충청남북도 내 연세의대를 나 혼자 졸업하고 역사상 안면도 태생으로 내가 첫 번째로 의사가 됐다. 나는 한국 의사 면허증을 바로 획득하고 미국에서 의사 연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ECFMG 자격시험도 의과 대학 4년차에 합격했다. 의사 자격으로는 미국에 올수 있으나 무의촌 장학금수여 이유로 졸업하자마자 무의촌 의료진료를 내 고향 안면도가 아닌 서산읍 서산 보건소에서 2년간 근무하고 바로 국민 3대 의무의 하나인 한국 육군에서 군의관으로 3년간 복무 했다.

하나님은 숙명여고와 약대 출신 이쁘고 검소하고 김치 고추장을 담고 식모를 두고도 부모님 농가집에서 손수 밥을 짓는 이춘자 약사를 무의촌 근무지에 보내셨다. 우리 둘은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을 하면서 53년간 금실 좋게 살면서 둘 사이에 2남 1녀 자녀를 두었다. 지금까지 저서를 통해 소아과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8천만 한인들을 도와주는 일과 이 글을 쓰도록 나를 만든 이도 바로 내 사랑하는 아내 이춘자이다, 보고싶고 감사한다.

미국에 소아과 연수교육응 받으로 오다

1968년 한국 육군 군의관 3년 근무 후 명예제대하고 바로 주머니 속에 100불을 넣고 인턴하러 도미한 후 6개월 만에 아내와 두 아들이 미국으로 왔다. 나는 미국 커네티컷 주 Manchester 병원에서 인턴, UCONN 의과 대학에서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2년간 수련받고 미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보드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놀외크 병원 및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3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미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보드 구두시험까지 시험에 합격해 미국 소아 전문의 보드자격을 1973년에 얻었다. 1984년 한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시험에도 한번 시험에 합격해 한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었다. 조국 고신 의과대학 초대 소아학 교실 주임교수, UCONN 소아청소년과 임상 조교수도 역임도 했다. 1973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커네티컷Willimantic 시에서 John Sangwon Lee, MD., FAAP 소아청소년과 게인 병원을 개원 하면서 Windham 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등 그 병원 여러 가지 중책도 맡고 그 지역의 교의,  의료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  커네티컷 한인교포 및 조국 한인들의 건강증진에 노력했다.

의과 대학 졸업과 동시 줄곧 부모·형제들의 생계 유지비 전액을 총 책임지고 부담하면서 미국 시민이 되자마자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들 심지어는 조카들까지 전 가족들을 1980년 전후에 미국에 이민시켰다. 지금도 동생 하나를 집에서 돌 보고 있다.

거의 20여종의 육아 책을 저작하고 웹소아과를 만들어 전세게 8.000 한인들을 아무 도움을 받지 않고  도와주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 의학 공부하고 한국을 뒤돌아 간다는 결심하고 1968년에 미국에 왔다. 한국에서는 간호사들이나 의사들만이 하든 많은 건강관리 진료를 미국에서는 평범한 부모들이 가정에서 보통으로 하고 있었다. 한국 의학도들이나 의사들이 의학공부를 하는데 쓰는 영문 의학서적을 보통 가정집에서도 동내 도서관, 학교도서관에서도 언제든지 누구든지 마음대로 보고 읽고 배우고 때로는 의사가 의학 공부를 하는 것 같이 부모들이 가정에서  의료 공부를 하는 것도 봤다. 그러나 그 무렵 나의 조국 한국의 실정은 어떤가? 스크스 박사 육아 백과 번역판 등이 부모들이 있는 육아 바이블이 있었다.

나는 조국 부모님들을 비록한 전 세계 8,000 한인들을 위한 임신 분만 출산부터, 신생아, 영유아, 학령기아, 사춘기아의 육아, 건강증진, 질병의 증상 진단 치료, 안전사고 및 질병의 예방, 자녀 사랑 등 A~Z 정보가 있는 소아·청소년 의학 백과를 저작하고, 소아과 의료 블로그, 신문 각종 메디아, 의학 세미나, 소아청소년과 웹사이트, 인터넷을 통해 물어보세요 등을 통해 한인 부모들이 적어도 의사가 되도록 육아 공부를 해 자녀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만약 의사들이나 그외 의료인들로부터 받은 진료 이외 더 필요 건강 문제가 생기면  부모 스스로가 의학 공부를 더 하고 필요에 따라 번째 의사 선정을 해 치료를 받을수 있게 도와주는 일도했다.

나는 의학도로서, 군의관으로서, 의료 연수교육을받으면서, 일선 의료인 생활을 직접 하면서 거의 50여만 환자들을 한국과 미국 에서 돌본 같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료사고 번도 경험하지 않고,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진료를 잘못 마음 아픈 호소를 한번도들어 보지 않았다. 특히 이곳 동네 미국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도  “Dr. Lee”는 베스트 의사라로 평을 받고 있다.

‘부모도 의사가 되어야 한다– www.drleepediatrics.com  소아과 웹사이트에 질병의 정의 증상 진단 치료, 육아 등에 관한 25 육아 건강 바이블이 들어 있다. 아이들이 아플 경우, 의료인들로 부터 진료를 받기전에 부모의 선행진료가 필요할때가 많다. 이 육아 건강 바이블이 속에는 의사가 진료할 때 부모가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건강 관련 내용이 의료인이 아닌 부모들이 알기 쉽게 A에서부터 Z까지 정리되어 있고 부모가 해야하는 선행 진료 법도 있다.

전 세계에서 보기드믄, 최고로 좋은, 최고로 실용적이고, 최신적인  임신 분만, 신생아 돌보기, 소아청소년 육아 건강, 질병의 정의 증상 진단 치료, 안전사고 및 질병의 예방, 자녀 인성교육, 자녀 사랑 등에 관한 2만 여쪽 이상 내용, 2만개 이상 의료 영상 및 그림, 13,412개 이상 제목이 있는 한글판 소아청소년과 웹사이트 바이블 www.koreapediatrics.com 부모도 의사가 되어야 한다를 2014년 출시했고 2020년 12월에 그의 제 2판 www.drleepediatrics.com 을출시했다. 나는 바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면서  20 육아 저서들은 내 놓았다.

  1. 소아 가정의학 백과, 618쪽, 1988년,
  2. 소아 가정 간호 백과-부모도 의사가 되어야 한다, 1,076, 1998년,
  3. 3. 신생아 영유아 학령기아 사춘기의 성장발육 육아, 623쪽, 2014년,
  4. 신생아 성장발육양호질병, 609쪽, 2014년,
  5. 모유 모유수유 이유, 308쪽, 2014년,
  6. 소아·청소년 뇌전증(간질)+뇌전증 백문백답, 241, 2015,
  7. 임신에서 신생아 돌보기까지, 300쪽, 1998년,

8.아들 딸 이렇게 사랑해서 키우세요, 210쪽, 1988년, 역저, 전 세계 명작 Ross

Campbell, MD. 저,

  1. 마약과 아이들 약 200쪽, 1988년, 10. 아들딸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키우세요 그리고 인성교육을 이렇게, 647 쪽, 2016년.
  2. https://www.flickr.com/people/drleesangwon, 2만 여종의 정원꽃 및 야생화
  3. http://blog.naver.com/drsangwonlee,
  4. https://www.facebook.com/drleesangwon,
  5.  안면도 출생 이상원 미국 top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241, 2017년,
  6. 뉴욕코리아– Newyorkkorea.net-Health-이상원 소아청소년과,
  7.  LA코리아– Lakorea.net- Health-이상원 소아청소년과,
  8. 뇌졸중에 걸린 사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출판사를 찾고 있음),
  9.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상원 일생 스토리 (출판사를 찾고 있음).
  10. 커네티컷 한인 주소록 1993년, John Sangwon Lee, MD., FAAP.
  11. 커네티컷 한인회지 1993년, 한인회장이상원저,
  12. Raise Your Sons and Daughters with Real Unconditional Love, Dorrance Pub.Com 출판 중(영문판, 400 ), 21. www.drleepeditrics.com 부모도 반 의사가 되어야 한다- www.koreapeditrics.com의 제2판 2020, 12.

네티컷 한인회의 회장으로 이상원.

1993년 커네티컷 한인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그 해 1년간 회장직을 즐겁게 수행했다. 초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고, 연세 의대를 다니며 안면도 무의촌 진료, 무의촌 진료 2년 군의 3년간 복무  제대 할때까지 리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의과 대학을 졸업한 한국과 미국의 의사 자격시험, 소아과 전문의 자격시험 등을 시험에 합격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지도를 많이 받으면서 건존한 자존심이 많이 강해졌다.

거기다가 예일의대, 하버드의대 등 미국 일류 의대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의사들과 같이 부족함이 없이 연수의학 교육도 받고 UCONN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직 수여 제안도 받고 한국 고신 의대 소아청소년과 주임교수로 임명 재직도 하고 32 동안 소아과 개인 병원과 진료도 문제 없이 잘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환자 진료 생활 이외 이 사회에서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바로 이때 이 모자르는 나를 커네티컷 한인회 회장으로 선출해 주니 즐겁게 수락했다.

커네티컷 주 지역 크기는 한국 남한 지역 크기보다 조금 작다. 한인 교포들의 수는   이하였다. 교포들의 교육, 경제 수준 다양했고 초기 한인 미국 이민 생활의 어려움, 언어 소통문제, 인종차이, 동서양인들의 사고, 성장과정, 습관등 차이로 너나 나나 한인교포들도 혼란스런 미국 이민 삶에 처해 있었다.

한인 회장으로 교포들이 더 즐겁게 이만 생활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인회에서 봉사한 선배 회장님들, 한인회 이사님들이 위상을 절하시킬까 걱정이 생기도 전 미주 한인 교포들에게 도움을 줄수 없는 한인회장이 될까 크게 걱정했다. 그러나 교포들의 문제에 관해 서로 논의하고 잘되도록 협조하고, 의사소통을 잘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고, 배려심을 가지고 회장직을 맡겠다고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부인의 허락을 받았다.

한인 교포들의 상호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커네티컷 한인교포들의 이름과 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한인 주소록을 발간해 교포들에게 배포했다. 그와 동시  영적 삶을 원활히 하기위한  한인 교회 정보, 한인 교포들이 각종 사업을 알리기, 고국 예행시 필요한 각종 항공사 정보, 커네티컷 주 이외 미국 각자역 도움되는 비즈니스 이름과 주소, 한국 영사관 주소 등을 주소록에 무료로 올렸다. 전 한인 교포들의 한분 한분의 목소리를 담은 한인회 회지를 그해 4회 발간 전 교포들에게 무료 배포했다. 한인회 회칙 개정에 전 커네티컷 교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참작했다. 각 한인 교회에 직접 방문해 인사드리고 교회와 한인회 상호 협조를 상의했다. 커네티컷 주를 10개 지부로 나누어 지부장 제도를 두고 한국의 크기 만한 각자역 산재해 거주하 교포들과 한인회 간 상호 연락 협조를 원활히 하려고 노력했다. 뉴욕 한국 대사관, 미국 전 지역 한인회 간, 한국 정부간 연락 망을 구성하고 각종 소식을 교포들에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한인 교포들 삶에 도움이되고 필요한 인성교육, 건강증진, 각종 건강 생명 보험, 자녀 육아 교육 등에 관한 세미나를 실행했다. 교포들에 도움을 줄 수 있게 커네티컷 주내 한인 의료인들과 교수님들의  주소를 한인 주소록에 수재헤 필요에 따라 이용하게  했다. 고달픈 이민 생활을 잠시 만이라도 잊고 교포들이 같이 모여 즐길 수 있는 한인회 피크닉을 야외서 갖고 밥, 김치, 떡, 음료수, 노래자랑, 특기 자랑 등으로 즐겁게 하루를 지냈다. 커네티컷 많은교포들을 모시고 년말 파티를 하면서 송구 영신인사를 했다. 한국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해외 동포상 , 또 민주 평화동일 자문 명예회원 후보자를 추천하라는 영사관의 부탁을 받고 후부자가되고 싶은 모든 교포여러분을 추천 드렸다. 교포 학생 여러 명에게장학금지급도 하고 의 7만불의 그해 한인회 회비를 수입하고 쓰고 남은 몇천불을 차기 회장단에 넘겨주었다.

미국 커네티컷Willimantic 시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32년 개업 진료 생활을 접던 해 이무용 회장님의 추천으로 “Dr. John Sangwon Lee is being named Korean of Year in The State of Connecticut (감사장 내용은 사진 참조)’ 2003년 12월 22일  커네티컷 주 주지사 John G. Roland 받고 2003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Top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선정됐다. 나에는 참 큰 상들이었다. 능력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더 오래 하고 싶었지만, 훌륭하신 차기 회장님에게  넘겨드렸다. 생각지도 했던 한국 대통령 김영삼도 만나고 국회의원 김종필 편지도 받고, 뉴욕 한국 총영사 이현홍 대사님의 칭찬도 받고 청와대도 방문 했던 기회도 가젔다. 한인회 회장직을 수행하다 환자 진료를 시간도 많이 뺏겼지만 보람 있게 한인회를 했다고 생각된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저는 둘째 아들 내과 의사에게 말을 여러분들에 드리겠습니다.

부모 형제자매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

하늘 땅을 울어러 볼때 부끄럼이 없고,

남들에게 모범적  삶을 살고.

정신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남을 도울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있고 사랑을 받을 있고 ,

건전한 자존심을 갖이면서

의식주 건강에 부족한 점이 없고,

조건 없는 진실한 사랑을 주고 받을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은 행복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해를 끼치지 말고,

육체적으로 해를 끼치지 말고,

윤리 도덕적으로 해를 끼치지 말고,

성적으로 해를 끼치지 말고.

환자를 몸같이 가족같이 사랑으로 치료 하라

“First, Do No Harm’으로 환자를 치료하라.

거기다가

의사는 5C3A으로 진료하라.

동정심과 사려심(Compassion) 가지고 

환자의 문제에 관심사(Concerning) 가지고

환자와 의사 소통(Communication)

치료 (Cure) 해주고

환자를 치료해 뿐만 아니라  가족도 보살펴(Care) 주면서고 진료하고, 

 의료진료 능력(Ability)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여유가 있고 겸손하고 Affordable,

진단 치료 추적치료를 주고

환자가 필요 때마다 도와 있게 Availability 가지고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소아과 의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의사

이이의 엄마로 부터 좋은 의사라고 평을 받을 있는 의사

아이의 아빠로 부터도 좋은 의사라고 평을 받고

아이이의 할머니로 부터 좋은 의사라고 칭찬을 받으면서 

아이가 낳아서부터  18~21세까지 단골 소아의사가 될수 있는 소아과 의사.

그러면 의학박사, 의사선생님,  Doctor라고 불림 받는다. 

언제든지 환자들이 많이 몰려온다.

그러나 의사는 백만장자는 될수 없다.

이런 의사를 아프리카에서도 찾고

한국에서도 찾고

미국에서도 찾고

하늘 나라에서도 찾는다. 

참말로 좋은 의사가 되기가 어려워요. 

나는 그렇게 의사 노릇을 하려고 많이 노력 했지요 

늦었지만,  한인회장으로 저를  선출해 주신 1993년 한인회 이사님, 회장단 및 임원, 지부장, 장학위원, 고문 여러분 그리고 교포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1년 3월 13일

미국 소아과 전문의 이상원 (John Sangwon Lee, MD., FAAP

상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