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막내 고모님
나의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가 네살때, 할머니가 막내 고모님을 임신했을 때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러니니까 막내 고모님( 여기 거운데 사진) 아바지를 생전에 한번도 보시지 못 했다. 고모님은 안면도 섬에서 태어났다.
물론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고모는 천수만 건너 홍성군 서부면 가나골 농부 고모부에게 시집 갔다.
아들 딸 다섯을 두고 논사지면서 살으셨다.
나는 안면도에서 홍성 중고등 학교를 다닐 때 그리고 서울에 연세의대를 다닐 때 방학이 되면 가끔 고모님을 다녀서 안면도 내집으로 갔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대학생들에게 교복을 입고 뺐지를 달고 교모를 쓰고라 명려령 했다.
내가 연세의대을 다닐때 내 반에서는 나 혼자 연세으데 다녔고 그 당시 홍성군 내 의사가 두명, 서산군에 두명이 밖에 었을 때 였다.
내가 교모 교복을 입고 고모내 가니 고모님이 너무 좋아하면서 크게 웃으셨다.
고모부는 공부도 못 해서 농부이나 그 옆 집에서 사는 고모부 사춘은 서부면 면서기이고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고 사춘길이 서로 말도 않고 지내니 고모 님은 항상 열등감을 갖고 살었다.
친정 오빠 아들이 장차 의사가 된다고 가기어려운 연세의대에 다님 것을 한번 자랑하고 싶었다.
나보고, 상원아.. 내일 아침에는 고모부 사춘 집을 열번 도라라 하시더라고.
시키는대로 그 집을 열번 돌았다.
저는 그후 의사도 되고 소아 가정 간호 백과 책도 쓰고 연세 대학교 총님들과 고모님을 비롯해 가족 친지 200명을 모시고 로텔 호텔에서 출판기념회에 까지 오신 고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