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소아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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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소아과전문의
그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 중장리 장등개 농부 아버지 이 시우와 농부 정향섭 어머님 부모사이 9 남매자녀들 중 장남으로 보이지 않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테어나 안중국민학교 왕복 2십리 길을 눈이 오거나 빗 바람이 불어도 혼자 6년간 다녔다. 졸업식에서 수석하고 수석 상품은 삽 하나 이었다.
그후 홍성 중학을 마추고 홍성 고교에 입학 일학년 재학중 패혈증( 지금 내 진단)에 걸려 3개월 동안 페니실인 주사 하루 한대 3개월 동안 누어 맞다가 광천에서 새번째 양의사의 진단 수술을 받고 다리에서 고름을 한 사발 꺼내고 살아 나서 고등 학교 일년 휴학 하고 홍성고등학교를 4년간 다녔다. 처음 진찰한 서울의대 출신 도립병원 의사는 아스피린을 갈어서 주고 다시 추적 치료도 않고, 그 야의사나 그 다음 본 한의사는 다리에 고름이 잡혀 있는 데 그 다리 부위 한번 진찰도 않고. 졸업하던 해는 홍고등학교 500 여명 졸업생 중 수석을 했다.
연세 의대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들어가 63년도 졸업 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 국가 시험에 합격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을 수여 받았다.
의과대학 시절 국가공여 장학 금, 학교공여장학금, 신문 돌리기, 가정교사 해서 얻은 돈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의과대학을 6년 만에 우수 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의과 대학 4년차에 미국에 의사로서 올수 있는 ECFM 시험에 합격했으나 흙 수저로 태어난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른 길을 택 하게 되었다.
졸업후 바로 서산에서 무의촌 2년간 봉사하고, 그후 대한민국 육군 군위관 3년 봉사 근무 하고 그후 바로 도미 해 UCONN 의대. YALE 의대에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커네티컷 주 Willimantic에서 소아과 진료를 32년간 할 때 주민들은 나를 좋은 의사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이곳 신문사에서 First, Do No Harm으로 인술보시를 베프는 의사라고 칭찬을 한 신문기사와 환자 진찰하는 이 상원 소아과 전문의 사진괴 저서 소아가정 간호 백과-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 한다 백과 사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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