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의 일생 사주 My Father’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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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의 일생 사주

My Father’s Life

무술의 이미지일 수 있음

고모부 전두성 (좌)과 아버지 이시우 (우)  그때 동내 고모부 댁에 가셔 찍은 아바지님 생애 최초 사진

아버님은 충남 선산군 남면 몽대 1915년 생 , 어머님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월현리 1918년 태생

 다음 글은 아버님이 위암 재발로 병상에서 고생하시면서 공책 종이 12쪽에 즉접 쓰신 글을 돌아가신 후 침대 밑에서 발견 하고 아들 이상원이가 여기 콤퓨터에 직접 옮감. 초등 학교도 다니지 않으신 아버님의 옛날 한글과 한문으로 쓰신

아버님 글 입니다 (1979년)

1-29 :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경주 이씨 석탄파 이시우

제 1쪽

어머님은 37세에 아버지와 사별하시고 우리 덜 6남매 길어서 남혼 어가 식키고 무시 무시한 고생 하시고 세상을 ㅅ더나 시 생각하면 퍽이나 불상하고 소원이 죽거든 아버지 옆히 뭇어 달라고 하기  그소원대로 장사 지나고

나난 4살 ㅅ대 아버지 일코 외로히 어머님과 형님 ()손에 8세나 먹고 나니 한문서당 ()에 다니게 되니 9살이 되던 정월() 에 안면도 숙부()ㄱ게서 사춘( )혼저서 서당에 보낼수 업다고 하서 정월 3일 남면()서 안면도 장등개() 종일 형님()과 와보나 두 다리난 압허서 움지기들 못 할 지경 사촌 () 두리서 퍽이나 사랑하고 정이 붓게 되고 사촌()과 두리 책을 기고 다닐때  붓 한개 먹 1개  가지고 글씨 쓰지못하고 누구더러 사달나고 할사람도 업고 손으로 글씨를 쓰다시피하고  그러자 8월 추석 13일 모인() 을 따라 집에오니 장등개로 출가한  누님이 반가워 날 ㅅ두어 어머니는 눈물 흘리면 목매 말씀하시 고 안면도에서 추석 세고 오라고 당부 했으나 공부(0도 조치만 저녁에난 밀 국수 해서 숙모와 점상 하고 사춘()과 작은 아버지는 난 녹이에다 쌀밥 해주며  원래 국수를 조하하지 안기로 수저만  들고 다 먹은 디 드러가  담밋에 섯다 다 먹은 디 사촌()이 외 아들이라 해서  귀한 복숭아니 참외나 감 배가 선사드러 오면 귀여운 사춘만 먹이면 그걸 보고 피해서 자치 업시 문 박에 나와  잇 ㅅ다가 다 먹은 디 들어가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하나 보리 죽이라 도 내 부모()가 조고 내 형제()가 제일이고  이저저모  생각 하고 안 가고 보니 우리 동내난 서당 압고 몽산 문면장() 조부에게 다니어서 몇달 다니며 공부() 하고 다니

제 2쪽

남면()학교도 업고 그러자 작은 형은 어려서부터 작은 아버지가 한문과 학교() 4학년()졸업 시키고 판목 나루터가 맞더니 배사공 형()더러 배삭 바더서 새금 내고 이쓰라고 하니 겨우선가 바다서 술이나 먹고 놀음이나 하고 일전() 작은 아버지에게 드리지 안고 보니 작은 아버지가 화 남면으로 보내고 작은 아버지게서 할 수 없이 소가 데리고 판목에  나난 그대로 노난 중() 숙모()게서 사춘을 위헤서 승언리 학교 입학()하게 3월() 에 오라고 기별해서 얼사 좋다고 3월  모일 밥먹고 안면도 향하고 판목 갓더니 숙부(0게서 네가 어지하여 왓니 묻기에 사촌하고 학교를 동행해서 다니라고 오라고 해서 갑니다 해더니 숙부 말 씀이 형님 안계셔 조카들 불상하고 가르켜서 엄당겨 살라고 해더니 네 형놈 보라고 하면  당정애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되도라오지 눈물이 비 오듯 하더라 아버지 생각

그 ㅅ대 나이 10세  작은 형은 남면에서 돈만 쓰고 큰 형 역시 남의 빗봉 연대빗이 태산 같은 걸  숙부가 알고 그대로 두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집과 밧을 팔아서 빛증이 나니 논 5두락() 하고 산() 삼자리 남는데 자근 형 내외() 어머니 나 동생 5식구() 논 농사짓고 살고 큰 형은 숙부네 농사와() 가사()를 보라고 형내외() 상호() 데리고 갓지 그리고 남면 학교 11살 먹던 해 한족 지며 입학 모집 해서 갓지  해쓰나 누구가 입학 시켜주어야지 나는 지게 지고 나무하라고 하니 어절 수 없지 12살 나는 해 형(0이라 쇠고가 면장() 논문서 의조 해서 돈 34양 내서 투전 하고 술 먹고 해서 다 쓴다고  해서 즉시 내가 안면도 가서 그말 숙부님()게 해서 즉시()그 다음 날 와서 면장과 대판 싸우고 할수 없이 논 5두락()에 9천양 팔아서 쓴 돈 값고 납머지 가지고  굴서링 집 밧 논 사고 숙부님 논 7두락 다 주어서

제 3쪽

근 하면 몃해 안가서 성공 할 터인데 작은 형 그 모냥 향 큰형은 술 만 조와하고 13살 부터 농사()와 전혀 내가 다 하는 순간 15세 되던 하 집과 논 3두락 전 천평()사서 작은 형 제금 내 쥴나고 가을 오기만 기다려더니 집문서 잡히고 노음해서 집과 전부 남의계로 갓다고 해서 전식구가 야단치고 자진 해서 나아게되다 그래서 식량 좀 주어서 흐르게 야학집으로 나아가 보니 전식구 마음 불안 하지 그럭 저럭 농사지면16새 되던 해 흘개 다나며 야학 3개월 배운 것이 한글 스는것이다

18세가 되어 장가드려서 네 모는 아무것도 모르는 16세 쌀 이고

그리고 19세 되던해 동생 출가 근히 시키고 20세 되던 해 형님과 아무 희망이 업기로 2월에 서부로 가서 친구와 걸어서 2일 간 천안 위성환  금전에 가서 할 수 없이 한방에 십여명씩 자고 먹고 금 전 일 해서 7월이 되고 보니 집도 외롭고 날도 더워서 집이라 오니 어둔 어모나만 울고 형님 내외분운 본채 만채 하고 동내 사람들이 못남 놈이라고 안조하더라고 하더라  그리고 번돈 60원을 아무도 모르게 집에다 두고 또 그곳에 가서 9월 말()까지 2십원 벌어 가지고 와서 돈 있는 체 안하고 보니 누가 조다고  하게느냐 집에서 하루 쉬고 장등개() 나가서 전선생에게 인사 하고  사람못데게 그러고 다닌 다고 걱정 하시기 할수 없이 듣고 장등개 () 집 매도되는 것을 물어 보니 네가 건방지기 집살 돈이 있는냐 뭇기로 알려 주십사 하나까 나 살던 집 판다가 무룻 거 내 돈과 맛다시피 해서 내일() 올터니 사주세요 하고 와서 형님께

저난 제금 나겟다고 하니까 집 살 돈이 있는냐 뭇기로 해야 튼 장등포 갑시다 말 하나까 그제서 전 식구가 조아하더라 그 일 () 와서 집전()  85소작 5두락() ㅅ저서 사고 집이 오니 어머님은 좋아서 우으시더러

제 4쪽

그리고 식구() 모인 중 소난 내개 버러서 산 소인대  큰 소난  형님이 갓고 송아지는 나 주고 집은 내가 사쓰니 상속 이전 비용()이나 보태주고 집압히 논 12 두락내 () 7두지기() 한배 미만 주시고 하니 형이 대답 하지 안해 어머이가 그것도 안줄게야 하시자 마자 그제서 승락 하더러 식량조()  3석 10두 ()주고  그러나 이상 주나  안주네 할 것 업이 20세 10월 달에  이사하

나혼자서 내가 압흐로서 3년 이상 지게 안지고 말이라 결심 하고 밤이면 네모는 삼 삼고 나는 11시  ㅅ가지 벗구리 만들고 새벽 5시면 송아지 죽 해주고 식전에 개ㅅ동 주어서 분전하고 아핌 먹고  눙개 한문더기 싸서 지게에 달고 어두게 한 싸리 찌면 남은 그 짐 이상 안하나 4집 ㅅ 지고  오면 저물 소소 하면  저녁 먹고 집 일 그대로 해서  먹구리 6개를 만들고 겨울부터 봄까지 번돈이 8십원 벌고 농시 농사()짓고 보니

 21살 될 때까지 가을에 추수하고 보니 나는 식량도 만족 하고 돈도 천양 되고 남들어 신용을 주고  이음이 좋외지던고 또 나 신덕리()모범가 되드라

22세 봄에 ㅅ작전 7두 떠 사고 그해 농사지어  추수 돈으로 그래서  30석이라 수자가 되드라

번돈도 하고보니    가을에 추수하고 식량 만족 할 돈도 천양 되고 보니 남들이 22세 싸리를 찔게아나라 ㅅ사리 상고 하던 사람덜이 나보다 인물이 출중 하지 안는       소작당 7두 () 또사고 그해 농시헤사 추수 하고 보니 돈을 번것도 해서 30석이라 수자가 되드라

그러니 싸리를 멀게핟 안해 싸라상고 하던 사람들이  사람들이 나보다 인물이 더 출충하지아는  사람들인데  ㅏ모덤 인물이 출주나진않는 분인데더 심골 학 는 그네들 올란  나는 그네들 앞에서 지게운 지난 생각 해보고 올에는 나도 입찰 해서 살고 해 보겠다고 겱심히고  입업소() 일본사람 시 ㅅ대에  입찰 광고가 부터기에 돈만 만드러 가지고 가더니 전래 하람 뿐이 입찰 가격 되나 목되나 뱆짱것 써 넣었더 나게로 낙찰되도 말더러 그리고 보니 정당() 채 난 떠러지고 채성()씨가 돈없이 하자기로 경엄도 적고해서 두리 동업하고 보나니 삼동 춘정월 하고() 4개() 하고 보니 힘 안들게 2천양이 생기거

제5 쪽

23세 ㅅ대 봄에 장등개 살든 집이 난다기에 사서 이사하고 자근 형이 남의 집에서  밧도 없고 그 모냥이어서 큰 형을 찾아가서 자근 형이 그 모양하고 있으니 토목개 집 종시가 해서 형님이 반부담 하고 내가 반 안고서 작은 형을 그리 살라하고 불응하는데 우리가 3형제 과거는 망론하고 우리만 집가지고 살면 되느냐고사리에 맛는 말을 하니까  할 수 없이 승락 해서 형님 이사시키고 절구와 목재일절 내주고 나난 살던집 원채만 사고 양채는 내가 진것이 아니냐  23살 ㅅ대 영목 가서 봄 부터 영목 가서 4촌과 둘이 금장이 십명데리고 6개월 하고 보니 재미보는 중 시비가 되어서 그만두고 3동에 금일 싸리도 입찰 해서 벌고 숫 허가 내서 벌고

24세 ㅅ대 약 돈이 9천 양이 되어서 감나골 한섬지기 살 실력이 되는데 망서대고 있는데 모친구가 배가 싸고 모든 거시 제구가 있다 하면서 당정히 부자될만 하고 나도 안면도 살 생각 저근처 좀 더 벌어가지 육지로 나갈까 즉시 배를 사서 겸음도 적고 2차 바람 마장서 죽을 번 하고 보니 더 하고 시픈 마음이 전혀 업기로 팔고 보니 그 좋은 돈 실패 하고 보니 겨우 2천양도 못데드라 그레서 집뒤 사촌 전()사고 보니 돈 실패하고 보니 천여적 술집 다니게 되고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업을 하고 보니 손님도 만코 실패 했으니 무엇을 하든지 다시 벌지 싶더라 그래서 25세 되든 해 대동아 전쟁이 터저서 증정 노무자로 책소부로 가고 농사고 무엇이고 도망해 다니기가 일이 되고 보니 낸들 할 도리가 업는 판에 4촌은 전북 진안군 가서 송진 사업()

제 6쪽

하기로ㅅ도 내 실정도 알고해서 전북 무주군()에 교섭해쓰니 인부 한 20명 이상 대리고 오라고 인부요원 중 전북도 산림()회장 증인으로 20건 보내서 인부를 구하니 (증용 노부자) 가기실허 해서 인부()만족한데 차ㅣ()지덜 용돈 좀 주고 보낼 수 업시 남의 이자돈 2천양으로서 인부() 17명과 나하고18명이 2일 만에 무주에 도착 해더니 산림계() 차석이 반가워하고 여관에 중ㄴ()잡어주고 다음날 부주6면()인데17명 나 기술자로군 차석강진구()와 나하고 다리고 다니면서그 지방 유지 차자서 배금 쌀로만으로는 배 고프니 주인이 보리고쌀이든 되는데로밥해주기로하고 4면에우서선 송() ㅅ갑대기를 ㅂ끼기로 45일 거쳐서 4면에 배치하고 되돟라 가보니 인()배가고파서 깃다고 아무도 업고 인부( 도구만 남아 할길 업서

깃다고 다가고보니 겨우 인구7명만 안해서할수 없이 군에 강진구()차자가서 말하니그도 걱정이지

왜냐하면 무주()군용 송진() 6기로 배당이라 6기료을  달성 못하면 임계장()면직 당하고 만판이기로 그도 걱정이지 인부 17명에사 10명가고 보니 17명 배급미로 7명이 먹고 더  초가헤 주기로하고 사업()해 보자고 하니 임부는 가고 그러서 9천돈()에 3명을 데리고 쌀을 배급 탄 대로 주인주고 밥을 해 달라고 해더니 그대로 밥해서 강진구()와 나하고 겸상하고 인부는 ㅅ다로 밥을 먹는 것을 보니 양심적 먹지 못하고 밥을 인부 덜 주고 저녁에 강진구와 같이 가자고 강()씨 가서 군()으로 가고 나는  설천면에 식전애 40리 걸어가서 면소재지도 사 먹을 것이 업어서 그 지방 산림 집에 갓더니 저녁상이 나와 보리쌀 넣고 죽 그릇 두리서 한 그릇 먹고 할말 하고 누어쓰니 잠이와 스스로  오니 눈물만 나오더라

제 7쪽 

 억지로 자고 식전애 군청 3리()걸어서 오니 정신이 업쓸 지경.이더라 진구(()를 맞나더니 억지생각하고 배금을  좀 넉넉히 주고 나더러 고생하며 무주군 내외() 지방()사람덜이 내논 송진 일절 금수타고  한다 하라고 해서   오도 갇 못학 1년을 마치고 겨우 식구()살것과 남의 돈 2천양   갑게되고 압으로 게속 인부() 멋식다리고 가서 4년채 심보학 보니 (준돈도)문제 업고  그 해만 마추면 벼백석거리는 살 것 갓더라 그래서 조타고 생각 해더니 8월 15일 해방되고 보니 번 돈은 산송()나무와 쓰던 도구 일절을 그 대로 버리게 되고 군수()가 맛고 도망 치고 군문서와 장부() 불꽃되니 두손 들고 겨우 식구()겨울 3동 살것 기지고 왔다

그래서 집에서 놀고 해방뒤 하루는 술집에서 살림주사()덜이 나점 마나 인사한다고 사람을 전인 하더라 그래 가보니 3 인중 소장 ㅅ지  와서  인사를 난고 4촌()도 청하고 닥도 잡고 술을 만족히 먹고나서 안면도에 와 보니 해안애 과거 일본 시대 벌목()해서 해안에 둔 것도 있고 스습해서 자기네 4인과 우리 둘이서 돈을 벌자고 하더라 그래서 돈에 욕기 안 날 수 업서서 그러나 김기홍() 당고모부도 심부럼 하개다 해서 이 ㅅ족 3인 전 편 4인() 합해서 작업 시작해지 4촌이 군산() 서천 목상()덜계 연락해 그로자 서천 라()씨 기홍이를 보냐 더 이 어찌해서서천군 산림계 차석이라 나무를 기홍이 있느데 이 어지해서 더 어지해서 안면도에서 ()그런 말 업시 문처 잇던 중 서천 산림업계 차석 () 대전가서 장께장()서신 외사 벅여화()안면 () 입업 조원 김임덛()과 4인() 나르 차자와서 그 으로 논 판다고 실 수 잇는냐 묻기에 실 수 잇다고 하고 마치 떤뚝가서 확실성을 알자고 해서 ㅅ다라가더니  관리소로 들아가자고 해서 듷러 가더니 그것이 이니안고 내들이 

제 8쪽

박재인 안종훈 빅찬구 () 정 고철롱과 네의 3인() 서천으로 3배 보낸 걸 말하라고 하니 참 난처 하더라 그래서 4인을 빼고 3 인이 해씁니다 고백 하면서 그 대로위험도라고 하나 내생각 중 4인 드러가니 우리 3인 당하나 마찬가지생각 하고 그대로나가더니할수 어시 서산가서 1개월 간 과료 천원씩 물고 나오더니 박계 4인()들이 고마계 여겨 아프로 임야에 증식으로 돈 벌게 잇다면 고생이 이 만큼 도정 해 주기도 하고 그러자 다 전근 하고 그 후임 자들도 오면 꼭 차자서 무엇이든지 뭇게 그리고 보니 집에서 있기 싶고 

집에서 서산 볼일리 있어서 갈라고 승언리 박한구()대서에 여행증명서 하러 가더니 (회열자 병때문에 여행 맘대로 못 할 ㅅ대)   마침 신춘식군() 서울 갈터인 데 장적 한배 실코가서 팔가고 장등개 김인배 논장사차로 간다고 하몀 에행 증명 내기로 집앞이 논을 신춘식))한테 배개고 보면 안데계생겨서 즉시 석산이고 무엇이고 집으로돌라와서 4촌괴 상의하고 두리서 그대로 매혀예상의하고 3인 안팔원 ㅇ게사서 상의 결과 매매)()내가 담당당 할터니 서울에가서 계약만 하고보자해서 근 근 계약금 거더가지고 44천이 가서 3일 만에ㅡ계약ㅇ,ㄹ 하공화서 4인(0은 본그므으로 존 논 3십 마지기식 차제하고 나머지 매매하고 ㅗ니 논 2십 마자가 번 수이되드라 

그래서 그해 4인(0은 본금으로 존 논 3십()마지식 차제하고 나머지 매매하고 보니 농사 4십마지기짓고 지네는 증 입업계 박계장()이 부임 되자 호화 벌목 한다고 벌목() 한다고 해서 알고 보니 사춘과 안필원 이만 한군대식 주고 내게로는 아무 말이 업기로 하루난 도 감독 자자가서 술도 먹고 당신들이 안면도() 임야에 산화가 난다든지 무엇이든이 하나도 관심 업시

제 9쪽

지금이라서 벌목()하면서 지방 사람을 괄세하고 인사조처 업고 해더니 다음 날 보자기로 현장()가더니 화목와  설목을 치급하라고 하면서 제의 들 쓰고 잇난 서기()를 동업 하라고 하면서 그외 ㅅ도 한사람을 3인 이 동업결과 9월부터 다음 해 2월()가지 하고 보니 만 한돈이 생계서 2인은 회계해서 보내고 나는 장등개에서 부터 굴사릉 긴장독 독깨 감나무골 까지 하고보니 엄청청난 현장에서 재고 화목과 송엽()차지하고 (그 웃금이라) 점, 구동글,남당리, 양앵대리 3군데에 전주 차 하고 네 배러 죽 실어다 6, 7월 그를 굼남 실려다 산 같이 싸 놓고

 너난 그해 중학교 입학 시험 ㅅ대라 그레서 중학교() 1등생()이고 수창이가 2등 생인데 모 선생이  인솔()하고 홍성() 일 전에가서 설마 중학교 1등 생이면 자신하고 합격 할 줄 알았더니 시험 치던날(공기가 조치 못 해서) 여하간  그학교 틀리면 농중이리도 보결로 (될가 하고) 네 외조부 농중학교 모인이() 외척되는 선생이있다기로 (조기 상치로 한단 사서 짐군에 지아 가지고 갓다 주고 모선생 () 내가 만 추궁 해지 다른 학교난() 사오십명식 입학시험애 합격하는데 우리 중장학교서난 일명도 못 붓게 되어 교장으로 부터 선생님들이 무능 하고 실력이 업는 선생들이 학교만 버리고 이쓰니 안되게 욕설 하다시피 해더니 모선생이 교장과 무슨 말을 하드니 너하고 수청이하고 보결로 임학 된것이다 그리고 나 잘 살고 자미되자 6월 25일 전장이 터지고 보니 그 ㅅ 대 중 삼구한청() 단장이되고 공산당아 각처에서 일어나고 할 수 없이 몸 피해서 산중으로 다니면서 해안에 있는 나무고 무엇이고

제 10쪽

생명이 제일 안이야 해변의 나무는 그럭 저럭 업서지고 각집에 갓다 논 나무도 공산당덜이라 제것 가다쓰고 때서 다 없어지고 보니 해방도) 그 모양이고 몸 살게 제일로 생각 그후  배 2척 사서 화성사 공사  일하고 남면 백사장 공사 마치고 충남대 염전 공사 맟추고 타산()이 공장도 마치 군산()워 마무리 공사 마치고 보니 차차 배버덤 차가 유리다고 해서 계제에 배 두게 팔고 방배도 팔고 보니 만난 사업 업고 농사는 50두가 양지야 임부 금은 비싸고 배 판 금으로 너 상분 상도 상률 상숙 상천 6명 대학 중고교 소학년 다니고 잇쓰나 남과같이 구구하게 학비 준적이 없이 해 나가든 중 답도 약간 팔고 쓰고 고리대 감나무골 농 12마지기 고지 주고서 농사짓고 보니 36석아 수익 인부 품삭 이외 어려 집 돈으로 나가게 되고 집압 9두로 식량하고 그물목 5두해서 일군 샥 영 주고 개 근너 3두 팔아서상형 대학 납부금 대주고 어째피 감나골 12두지기돈만 대로 학비 당겨쓰고 논은 논대로 없어지고 팔게되자 상원이가  정진해가 싼 돈 2백만원 요고 한다고 해서 감나골 논을 97만에 판 것으로  춘추 납부금 2십만원 낵고 월 숙비1800만원 용돈 그러면 백만 만 요구 한다기로 7만 받아도 쓸만 하고졸업시는 본전만 가저도 다행으로 생각 한 것이다 그리고 그시절 금리가 10부하고 15부 25부까지

장이 쌀이 공장이 미금은 600원에 한달에 쌀 한가마니 사고 하숙비 주는 ㅅ 대라서 집안페 농사지어서 식량하고  농사지어서 일군 치송하고 잇는 동이 약 7십만 수종에 돈 만흔 것으로이자 바다서 상도 상도 이하 치송 하면 돈도 그런  대로 사라지고 논 팔은 것을 상원 졸업헉ㅎ츶아서 ㄴㄴ에묻든지할ㅇ고 햇더니 고리데  토자고보나 그돈 저돈 할 것 없이  

제 11쪽

다 느러가고 집압 논 9두 그믈목 논 45 두 남어서 그물목 논 팔아서 겨우 상원 졸업 시키고 한심하기한이 업스니 장등포에사 살고 시픈 전혀 없는 건 내 돈으러 학교 빗 집 사준 제 부가 10일 도 못되여 고리체 넎고 간사지 집 한채 사준 제것도 잇고 집집마다 내 돈 안쓴 사람이 업고 심지어는 임시 한다고 해서 쌀 두말 보아 준것도 고리채에 늣고보니 누구든지 인간이라면 마음이 환장되지 안할 수 었을 것 같더라

장등포 일절 팔아가지고시장 와서 장옥과 전사고 자본이 남어서 참고짓고 미곡 장사하는 중 상분이는 듣노 결혼 하고 중 출가하는 동안 팔목 장사나 시켜달고 해서 일부사작  나는 미곡장사 하는 중 상분이를 갑자기 데리고 간다고 헤서 제가 쓰던 필목으로 옷가지나 해 가지고 기타 예식비 무엇이든 지  내게 있던 돈으로 쓰고 네가 장가든 있는 대로 쓰고 내 수중에는 일전 도 없고 필목 팔던것이 3십만원어치 나머서 장사 시작 해 외상 주기를 좋아서 남의 말을 좋아 하기로 그래서 1년도 못가서 그나마 실패 한다고 하니 그제부터 욕이나 하고 시장 청년들께 무수한 봉변만 당하고 참아 부끄러서 살 수 없어 밤에는 저도 모르는 상도 상숙 상천 3-4십만씩 주어서 말을 못 하게 하고 술집 조하 하고 행동이 난잡 해서 그러다 보면 큰 소리가 나서 내가 부끄러서 너희들 잇는 3년을 보내고 자본 없이 장사 못 하고 너의들은 미국으로 와 버리고 네모는 누구를  맛나는지 어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냐고 그래서 애들 장래 생각 해서 네가 준 준돈 10만원 가지고  종적 업시 애들 하고 살든 말든 갈가 생각 하고 나 조차 술을 좋아 먹고 해지 

제 12쪽 

건 다난 생각으로 술을 더 안먹고 보니 더구나 더 볼수 업어서 서울 다방 9만원 짜리 얻고 제야 오든 말든  상숙() 전학 상용 상천 전학 하고보니 시장 빗도 만한 것도 기퍼주고 할 수 없이 따라 와서 이쓰니 할 도리가 업지 사람이 그 모영이 되고 보니 

나난 자식 5형제 딸 둘나도도 내가 부모 세업 업고  배운 것 업고 7남매 종 상룡이만 소학이고 대학중고생이 되고 상원이는 미국에 가면 박사라고 인정 하고 메누리도 약사 출신이고 사위도 그만 하면 안면시장()에 누구 말  못 지나 자식덜 생각지 않고 내가 4차나 죽을 봉변을 당한 것을 보면 내가 두양도 못 하고 말 다툼을 하면 그런 일을 당 하는 것을 불상이 여겨서 생각할 일이 안이다 그러자 네게서 생각이 없는 돈 4십 만원이 보내서 전세 독차디 전세독채 들어가라고 해서 생각하니 이돈 전돈  합해서 3 간 이리도 내집 만들려고 한달응 집짓는 데 다니면서  연구해서 시작 할때

자기가 상룡이 데리고 두리 대지를 구경시키고 거기다 집지면 장래성 있다고 네가 집을 지니 무엇 을 하라고 본척도 안하고 살룡이와 둘이서  도방 치기 하도 

어이가 업서서 나 혼자서 40일 되 던 날 시골에서 왓더러

오더니 어이가 업느라 그레서 목수 품삭과 외상물은 방두개 노하주고 보니 빗은 일전도 없이 하고 그집을 팔자고 해서 팔고 보니 방세 ㅅ배주고 98만원이 남더라 그레서 독체 5만원에 사고 그러자 상도가 병이 심해저 무엇을 하게 안해 준다고 매일 가가 요동을 치고 그러자 춘헌이 처가 무료로 사업 하자고 해서 상도 점 재미 부치면 날가하고 재혼이와 상도하고 시작 한 것 아닌가 

제 12쪽 

시작하고 보니 상도난 이것 저것 다 실타고 해서 그 때부터 응암동 병원에 늣고 나하고 재혼이가 하나 재혼이는 시골로 가고 나혼자서 일년 내 주글 고생해서 학함리 집 짓고 세방 얻어주고 상률 예식 보태쓰고 그럭 저럭 한세상 보내다 자본 없어 집 짓는 사업 못하고 정민에 집짓는데 3년간 도와 주고 만것이다 제일 원하는 것은 선향 산소 비석 하나 세우지 못 하고 장등 학교에 다 다소라도 무엇 해 2주지 못하고 세상 떠나는 것이 원통하다.

윗 글은 1980년대  아버지께서 위암 재발로 미국 저의 집에서 작고 하신 뒤 침대 밑이 써 놓으신 글을 제가 쓰신 글 대로 여기에 베낀 것이다  서당공부 3개월 하신 아버지 시…..어린이의 이미지일 수 있음

이상원박사의  아버지  이시우의 시,

A poem by Lee Si-woo, the father of Dr. Lee Sang-won. 1980년 아버지께서 쓰신 글

양춘가절 호시절,
꽃이 떨어지니 봄산이 빈 것 같고
새가 울어도 눈물을 보지 못 하고
녹음 방초로 만산에 홍록이고
봄철이 가고 여름 철이 오는 구나

춘몽이 깨우고
삼동을 엇찌 보냈나
작야에 남풍이 슬슬 불어 오드니
금일에 감우가 순순이 오는 구나
삼춘 가절은 가치 없이 가쓰나
삼천초목은 춘색이 늦는구나

어려서 부터 미국이라 하더니
와서 보니 산천이 평평하고
모든 것이 풍부 하고
이 모몸이 병이 들어 진퇴 양난일세
식다 하나 육신 상고라

조재 견 불눈이고
화낙 춘산공
새가 울어도 조재하니 봄산이 빈 것 같고
꽃이 떨어지니 봄산이 빈 것 같고
새가 울어도 눈물을 보지 못 하고
녹음 방초는 만산에  홍록이고
세월은 이미 여름철이 가는 구나

인생 일장 춘몽
우연히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전후 산천이 록색이로구나
나무 가지가지에
꽃이 피어  붉어지고
벌과 나비는 래상 접하는 구나
춘초는 년년 초록 하건만
인생은 귀 불귀 하는구나 ”
1980년 12월
아버지 이시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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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 치료를 받은 후 재발해 돌아가시기전 쓴 시를 돌아 가신후 침대 밑에서  발견

나의 아버지는 내가 알기로

안중국민 학교 학부형 대표

주장리 3구 이장으로서

중장리 공산당 토벌 대장으로

가족 족보 운영자

중장리 농업조합위원으로

연평도 조기 중선 운영

농주 소주 제조자

김살 운영자로서

화물선 주인으로서

화목 판패 자로서

고리 대 금 업자로서

쌀 장사로

의복 장사로서

교육자로서

집짓기 자

장등 분교 설입지로서

무주구천동 송진내기

미국 이민 오새 살기

장한 아버지로서

나는 연세의대 다날 떼 무의촌 봉사 조건으로 2년간 등록 장학금을 국가에서 받아 썼다. 대여 장학금을 의대에서  2년간 받아 등록 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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