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보이지 않는청진기르 걸고 태어난 이상원 소아과전문의

posted in: Uncategorized | 0

목에 보이지 않는청진기르 걸고 태어난 이상원 소아과전문의

그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 중장리 장등개 농부 아버지 이 시우와 농부 정향섭 어머님,두 부모사이 9 남매자녀들 중 장남으로 보이지 않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초가 삼칸 집애서 테어닜다.
삼칸 웃방에서 자다께어 보면 벽에 빈대가 설설 기어 다녀 손을 눌러잡으면 빨간 피가났다.  거기다가 모기가 막 물었다. 모가장 하나도 없고. 낮에는 벼룩이 성가시게 문다. 머리에 이가, 몸에 이가 기어다나면서 물고 알을 깐다.
변소에 가면  하얀 회충 기생충이 보인다.  때로는 촌충도 보인다. 어른이나 아이들 가르지 않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애 걸려 않는다.
그 당시 안면도에는 국민학교가 6개 있는 한국 섬들 중 일곱번 째로 큰 섬이었지만 내가 미국 1968년 올 때 까지 의과대학 졸업 한 의사가 하나도 없었다.
여섯살 여 동생이 귀젖이 나게에 가서 페니실인알약을 사다 2-3일 먹였더니 낫었다. 어머님이 말라리아에 걸려 산토닝을 가게에서 사다 드렸다니 낫었다, 어머니께서 항상 앓으셔 맴 술울 사드리고 봉양, 반하, 창출 등 한약재도 산에서 캐다 드렸다. 홍성 시장에 가면 호랑이 간과 껍질이 만병애 좋다고 해서 사다 드렸다. 잔대도, 창출도 좋다고 해서 초 중교 다니며 어머님 병 치료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의학교 일년 때 청기로 어머님 심장을 처음 진찰 헤 보니  심장 판박이 상해 비 정상 심장이 있다는 것을  듣고 심장 병을 앓으시는 것을 처음을 알았다.
연세 의대 다닐 때  안면도와  연세 의데 무의촌 관계를 맺고 4년동안 안면도 물의촌 무료 진료를 해주하고 무료 ㅠ진료를 한후 나는 방학때 서울로 가지 않고 안면도 동네 무료 진료를 했드니, 나 중에 국회의원 될라고 그런다고.
안중국민학교 왕복 2십리 길을 눈이 오거나 빗 바람이 불어도 혼자 6년간 다녔다. 졸업식에서 수석하고 수석 상품은 삽 하나 이었다.
그후 홍성 중학을 마추고 홍성 고교에 입학 일학년 재학중 패혈증( 지금 내 진단)에 걸려 3개월 동안 페니실인 주사 하루 한대 3개월 동안 누어 맞다가 광천에서 새번째 양의사의 진단 수술을 받고 다리에서 고름을 한 사발 꺼내고 살아 나서 고등 학교 일년 휴학 하고 홍성고등학교를 4년간 다녔다. 처음 진찰한 서울의대 출신 도립병원 의사는 아스피린을 갈어서 주고 다시 추적 치료도 않고, 그 야의사나 그 다음 본 한의사는 다리에 고름이 잡혀 있는 데 그 다리 부위 한번 진찰도 않고. 졸업하던 해는 홍고등학교 500여명 졸업생 중 수석을 했다.
연세 의대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들어가 63년도 졸업 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 국가 시험에 합격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을 수여 받았다.
의과대학 시절 국가공여 장학 금, 학교공여장학금, 신문 돌리기, 가정교사 해서 얻은 돈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의과대학을 6년 만에 우수 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의과 대학 4년차에 미국에 의사로서 올수 있는 ECFM 시험에 합격했으나 흙 수저로 태어난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른 길을 택 하게 되었다.
졸업후 바로 서산에서 무의촌 2년간 봉사하고, 그후 대한민국 육군 군위관 3년 봉사 근무 하고 그후 바로 도미 해 UCONN 의대. YALE 의대에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커네티컷 주 Willimantic에서 소아과 진료를 32년간 할 때 주민들은 나를 좋은 의사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이곳 신문사에서 First, Do No Harm으로 인술보시를 베프는 의사라고 칭찬을 한 신문기사와 환자 진찰하는 이 상원 소아과 전문의 사진괴 저서 소아가정 간호 백과-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 한다 백과 사진 책.
내가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아주 드믄의사라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