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소아과 전문의는 누구인가
목에다 보이지 않는 청진기를 걸고 손에는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한다-소아가정간호 백과”책을 들고 태어난 안면도 태생 이상원 소아과전문의
사람 2명, 병원 및 문구: ‘NorwichoBulletin Bulletin Normich SentngeastamConetiutsioo171 Serving eastern Connecticut ince 1791 Dr. John Sangwon Lee examines Cheyenne McKinney, o Franklin his Willimantic office. Below, he Medical Care Newborns, Infants, Children and Adolescents,” which has been published in Korea. Physician puts patients first Phocos byAaro Aaron kum,Nucnwich Buletin holds his book, “Home’의 이미지일 수 있음
그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장등개 농부 아버지 이 시우와 농부 정 향섭 어머님, 두 부모사이 9 남매자녀들 중 장남으로 보이지 않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손에는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한다-소아가정간호 백과”책을 들고 삼칸 초가 집에서 1936년 10월 9일에 태어났다.
삼칸 웃방에서 자다깨어 보면 벽에 빈대가 설설 기어 다녀 손을 눌러잡으면 빨간 피가났다. 거기다가 밤에 모기가 막 물었다. 모기장 하나도 없던 시절. 낮에는 벼룩이 성가시게 물었다. 머리에 이가, 몸에 이가 기어다나면서 물고 알을 깠다.
변소에 가면 하얀 회충 기생충이 똥에 서껴 꿈틀거렸다. 때로는 촌충도 보였다. 어른들이나 아이들 가르지 않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 앓았다.
그 당시 안면도에는 국민학교가 6개 있었고 한국 섬들 중 일곱번 째로 큰 섬이었지만 내가 미국 1968년도 미국에 의학 연수교육을 받으러 올때 까지 의과대학 졸업한 후 의사 면허증을 가진 의사가 하나도 없었다.
여섯살 먹은 나의 여 동생이 외이도에서 귀젖이 나서 10리 떨어진 중장 동내 방한칸 자리 잡화상 가게에 나혼자 걸어 가서 페니실인 알약을 사다 2-3일 먹였더니 낫었다.
어머님이 말라리아에 걸려 산토닝을 가게에서 사다 드렸더니 낫었다,
어머님께서 항상 앓으셔 맴 술울 사드리고 봉양, 반하, 창출 등 한약재료도 산에서 캐다 다려 드렸다.
홍성 중학교에 다닐때 홍성 시장에 가면 북치고 장구치면서 호랑이 간과 껍질이 만병애 좋다고 광고해서 사다 어머남께 드렸다.
잔대도, 창출도 만병에 좋다고 해서 초 중교 다니며 어머님 병 치료 하느라고 많이 노력 했다.
내가 연세 의괴대학교 일년 다닐때 심장 청진히는 법을 배우고 방학 때 집에 와서 청진기로 어머님 심장을 처음 진찰 해 보니 심장 판막이 상해 비 정상 심장음이 있다는 것을 듣고 심장 병을 앓으시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연세 의대 다닐 때 박정회 대통령이 한국 전역에 무의촌 진료제도를 만들었다. 나는 그 뉴스를 듣고 안면도와 연세 의대 간 무의촌 진료 관계를 맺고 그후 4년동안 나는 10 여명의 연세 의대생들과 교수 한분이 안면도에 가서 안면도 무의촌 무료 진료를 10여일 동안 해주었다. 무료진료를 한 후 나는 무의촌 진료학생과 같이 서울로 바로 가지 않고 안면도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계속 했드니, 나 중에 국회의원을 출마해 국회의원이 될랴고 그런다고 수근 수근 .
안중국민학교 왕복 2십리 길을 눈이 오거나 빗 바람이 불어도 혼자 6년간 걸어 다녔다. 졸업식에서 53여명 졸업 생들 중 수석하고 수석 상품은 삽 하나 받았다.
그 후 홍성 중학교를 마추고 홍성 고교에 입학.
고교 일학년 재학중 나의 뒷 목에 호발주가 생겨 손으로 짜고 조명래 고약을 발았다. 그 다음 날 열이 몹시 나서 하숙 집에서 20분동난 기어 홍성 도립 병원에 갔다.
그 도립병원 원장 의사는 서울 의대 출신이었다.
나의 목구멍만 처다보고 병명도 말하지 않고, 원인도 말해 주지도 않고 치료 방법도 한마디 없고 집에 가면 누가 치료 해 주느냐 하고 묻지도 않고 아스피린 알약만 갈아주어 하숙 집으로 혼자기어 돌아왔다.
얼마나 심하게 앓았던지 하숙집 아주마께서 20리 떨어진 홍동 개월에서사시는 외 할아버지께 연락 해서 외 할아버지께서 오셔 한의사한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패혈증 ( 목뒤에 있던 호발주의 원인인 박테레아균이 전신 피 속으로 퍼저 전신에 박테리아성 염증이 생겼다. 지금 내 진단)에 걸렸다.
그후 그 한의사는 한약 하루 한첩, 3개월 동안 페니실인 주사 하루 한대 3개월 동안 주고 한번도 내가 앓고 누워 있는 외가 댁에 방문 진찰도 안했다. 고등학교 선생님 한분, 친구 한분도 방문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병문안 와서 안방 웃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사춘기에 있는 내가 다 들을 수 있개 “저애는 죽게 생겼구먼”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안면도 나의 어머님은 7 동생들, 집 일군 , 철에 맞는 농사일을 하시고 집에서 걸어 2십리에 있는 장배를 타고 하루 종일, 또 광천 독배를 도착해 40리 걸어 내가 앓고 누웨 있는 외가댁에 한번도 오시지 안 했다. 그래서인지 안면도에서 한번도 병 방문을 안 하셨다. 아버지만 매 2주에 한번 정도 오셨다.
이렇게 누어 주사 맞고 치료 받다가 지게에 지여 광천에 있는 양 의사한테로 갔다. 그 의사는 6 25 사변으로 서울에서 개업 하다가 광천으로 내려온 의사이었다. 그 의사는 나를 머리서부터 발끝 까지 진찰 하더니 바른 쪽 허벅지 다리에 고름이 잡협다고 진단하고 그날 바로 전신 미취를 하고 허벅지 다리에서 고름을 한 사발 꺼내고 나는 그날 부터 살아 나서 고등학교를 일년 휴학 하고 홍성고등학교를 4년간 다녔다.
처음 진찰한 서울의대 출신 홍성 도립병원 원장 의사는 아스피린을 갈어서 주고 다시 추적 치료도 않고, 그라고 나를 본 한의사는 다리에 고름이 잡혀 있는데 그 다리 부위를 한번 진찰도 않고. 그분들은 의사라고 밥을 먹고 살았다.
나는 살아서 졸업하던 해는 홍고등학교 500여명 졸업생 중 수석을 하고 도지사 상을 타고 의사가 되고자 연세의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안면도 태생으로 연세 의대를 한국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들어가 63년도 연세의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 국가 시험에 합격한 후 한국 의사 면허증을 수여 받았다.
의과대학 시절 국가 공여 장학 금, 학교 공여 장학금, 신문 돌리기로 번돈 , 가정교사 해서 얻은 돈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의과대학을 6년 만에 우수 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의과 대학 4년차에 미국에 의사로서 올수 있는 ECFM 시험에 합격했으나 흙 수저로 태어난 나는 의대 졸업 후 눈물을 흘리면서 가고 싶은 길로 못가고 다른 길을 택 하게 되었다.
졸업후 바로 서산에서 무의촌 2년간 무료 봉사하고, 그 후 대한민국 육군 군위관 중위로 3년 봉사 근무 하고 그 후 바로 도미해 UCONN 의대. YALE 의대에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커네티컷 주 Willimantic에서 소아과 진료를 32년간 할 때 주민들은 나를 참 좋은 의사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
나는 고신 의대 소아과 주임 교수로, 미국 커네티컷 의과대학 소아과 임상 부교수로, 전세계 무료 인터넷 진료, 미국 Top 의사, 미국 Top 소아과 의사로. 소아 청소년 육아 건강 백과 다수 저자이고 Drleepediatrics.com 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신문 기사에서 First, Do No Harm으로 인술보시를 베프는 의사라고 칭찬을 한 신문기사와 환자 진찰하는 이 상원 소아과 전문의 사진괴 저서 소아가정 간호 백과-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 한다 백과 사진 책.
내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너는 이 세상에 가서 의사가 되라”고 하시면서 이세상에 보내신 아주 드믄 의사 이상원이라 생각 합니다.
의사가 된 두째 아들이 우리 집애 왔다 우리 두리 골프를 첬다. 골프를 치다가 다음 홀로 가면서 야 조야 요즘 어떠냐?. “좋다고”. 네 여자 친구는?. “헤어 젔어요”. 왜? 왜? “거짓 말을 해서”. 무슨?
“담배를 피우고 안피운다고?” 어떻게 아랐어? “키쓰를 했더니”.
“대디, 이떻게 50만 여명 환자를 보고 의료 사고 법정 문제 하나 없이, 환자가 글로 대디에게 불편 하나 없이 지냈지요?”
죠 좋은 질문이다.
나는 환자를 볼때 ” First, Do No Harm” 으로 진료하고 환자를 내 몸과 같이 내 가족 같이 치료 했다.
그리고 5Cs( Compassion, Concerning, Communication, Cure, Care)와 3As( Ability, Available, Afforderble)로 치료 했다. “대디 감사합니다”.
나의 서재애 그간 본 의료용 책 2만권이 있고 내목에 찐자로 걸고 환자를 보던 보이는 청진기뿐만 아니라 신생아용 혈압기, 소아 성인용 혈압기, 눈 검사기, 귀 검사기 등 각종 의료기가 한 가방차 있는 것을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소아가정 간호 백과 뿐만 그 동안 읽은 책들이 집에 가득 찬것을 보라
20025년 7월 9일 이상원 소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