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perience of Sepsis 나의 패혈증 경험
나의 패혈증 경험 My Experience of Sepsis 나는 충남 서산군 안면면 중장리 장등개 태생이었다. 그때 안면도에서 홍성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부모가 부유하고 부모가 자녀교육에 투철해야 했다. 나는 얀중 국민 학교 졸업반 50명중 일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식날 “이상원은 품행이 방정하고 학력이 우수 해서” 상장을 주시면서 상품으로서 삽과 한글 국어사전을 하나 받았다. 그 날 졸업식에 오신 졸업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동네 이장님과 구장님들이 졸업식 교실 한쪽에 앉아계셨다. 내가 상장을 받고 어르신들을 처다 보니 아버님도 나를 보시더니 웃으시는 것을 봤다. 그중 나하고 다른 학생 둘이서 홍성중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졸업했다. 그 당시 나는 홍성읍 한 가정집에서 한달에 쌀 5말을 주고 먹고자고 하는 하숙을 하고고등학교에 다녔다. 내가 홍성 고등하교 1년 재학 중, 17세경, 지금부터 70 여년 전 나의 뒷 목에 호발주가 생겨 손으로 짜고 이 명래 고약을 부쳤다. 그 다음 날 열이 나고 몹씨 아파서 1마일 정도 혼자 기어서 홍성 도립 병원 의사 한테 갔다. 입을 벌여보라서 입을 벌이고 청진기로 가슴 진찰을 하고 무슨 병이란 말도 없고 아스피린을 가라서 주어 먹었다. 갱신이 혼자 걸어서 하숙집으로 돌아 왔다. 물론 전화도 없으니 부모님에게 연락도 못했다. 걸어 이틀 정도 가면 안면도 나의집이 있었다. 하숙집 아주마가 어떻게 아프냐고 가까이 와서 묻지도 않고 입맛이 없어 먹지도 못 하고 물 한모금 떠다 주는 사람도 없썼다. 그러나 계속 열이 나고 아팠다. 한 이십리되는 곳에 사시는 나의 외 할아버지가 오셔 나를 데리고 가서 외가댁에서 치료를 받았다. 외 할아버지 댁 근처 한의사 한테 나를 데리고 갔다. 어떻게 나의 외 할아버지께 내가 아프다고 연락이 됐는지 지금도 궁금 하다. 지금도 그 하숙집 아주머니께 돈을 한주목 드리고 싶다… 그 한의사는 맥박을 집고 병명이 무었인지 설명도 없이 펜이실링 주사를 한대 주고 한약을 다려먹으라고 주었다. 그후 10여일 동안 주사를 맞고 조금 좋아 지니 펜이실린 주사는 주지 않고 한약을 하루 한첩 대려서 먹으라고 해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 거의 3개월 동안 먹었다. 앓고 누웨있는 17세 사춘기 아이 내 앞에서 외가 댁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다. 사춘기인 내 앞에서 죽게 생겼구먼…. 그런 말을 듣고 참 …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