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Pardon용서는 인간 사회에서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윤활제이다.우리 인간 사회에서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구든지 잘못을 때로는 할 수 있다.우리는 매일 용서해 주고 용서받고 산다.과거의 것은 버리고 새것으로 대치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과정이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내가 잘못했으니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란 말을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해야 할 말들 중 하나이다.용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①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벌하지 않는 것②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음③ 관용을 베풀어 꾸짖지 아니함④ 분노를 완화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툼질을 서로 화해시키고 기운 나게 하는 힘을 가진 해제 행동이다 (Leo F. Buscaglia 저 Loving each other).진정한 참 용서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고귀한 행동 중 하나이다.과거에 이미 저질렀던 잘못을 지금 와서 완전히 고칠 수 없다.그런데도 과거의 잘못을 지금까지 계속 붙들고 생각하고 있는가.마음속 깊이 지닌 미움, 원한, 걱정을 다 비워라.멀리멀리 보내버리고 잊어라.너도나도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확실하고 옳게 판단할 수 없고 남의 잘잘못을 네가 심판할 수 없다.잘못한 것을 복수해서도 안 된다.잘못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 맡겨라.용서해주어라.그러면 너는 편안하고 자유로울 것이다.번민과 고통이 없어질 것이다.그러나 용서해 주는 것은 쉽지 않다.우리 모두 완전하지 않다.우리 모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그러나 잘못을 고치지 않고 계속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해 주기가 어렵다.용서해 주지 않는 대가가 때로는 상당하다.때로는 용서해 주는 대가보다 훨씬 크다.용서를 해주지 않고 미워하고, 원한을 품고, 앙갚음하는 행동은 자멸적이고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 있다.인간관계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과정에는 온정과 동정심이 있어야 하고 온 힘이 필요하다.그래야만이 증오감이 완화되고 마음에 평화와 안정성이 생긴다.학대, 유기, 무관심으로 입은 육체적, 심리적 상처가 치유된다.원한이 화해되고 결렬이 재결합되고 기운이 솟구친다.분노와 격분이 수그러지거나 없어진다.고통이 없어진다.석가모니의 자애, 동정, 자비심은 용서에 바탕을 두고, 예수의 조건 없는 사랑도 용서의 위력에 기초를 둔 것이다.“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마태복음 6장 9~13절에 있는 성경 말씀이다.“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역대하 30장 18절, 욥기 7장 21절, 이사야 55장 7절, 요엘 3장 12절에 용서에 관한 성경 말씀이 있다.이런 성경 말씀은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 원만한 대인 관계를 갖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훈이다.추수감사절 날 저의 가정의 식구들 모임에서 가족들에게 프린트해서 주었던 교훈이 있다.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과 그 교훈을 나누어 갖는다.우리가 사는 동안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기 위해 많이 써야 할 말들이다.첫째로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I was wrong, please forgive me)이고둘째로 “당신 참 잘 했습니다.” ( You did good job)이고셋째로 “당신의 의견을 한번 말씀 해주셔요.” (What is your opinion)넷째로 “도와드릴까요.” (Can I help)다섯째로 “감사합니다.” (Thank you)여섯째로 “당신” (You)일곱째로 “나” (I)(저자 불명)우리 모두는 완전하지도 않고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우리는 부모한테, 형제, 친척, 친구, 이웃 사람들한테, 스승한테 이 세상 모든 사람들한테 알게 모르게 잘못하면서 살고 있다.그리고 사과하고 용서받고 살아간다.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부부간에도 알게 모르게 서로 잘못하고 서로 용서 빌고 용서받고 살아간다.부모는 자식을 용서해 주고 또 자식은 부모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그렇게도 몇십 년 동안 냉전 상태에 있던 소련과 미국도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월남과 미국, 일본과 한국도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하고 용서받았다.용서를 빌고 용서받고 우호적 관계를 갖고 사는 나라가 이 세상에 수없이 많고 우리 인간들 사이에 생긴 잘못을 용서해 주고 용서받고 산다.남편을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죽인 자를 용서 해주고,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없어 유기됐던 자식이 친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 밑에서 자라 성인이 되고 성공한 후 생모를 찾아 서로 용서를 빌고 받기도 한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인가.용서받지 않고 죄의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나 부부들은 때로는 너무도 마음 아플 수 있다.용서를 받는다고 해서 죄의식은 언제든지 다 없어질 수는 없다.그러나 용서를 통해 가지고 있던 죄의식을 가슴속에서 비울 때 부부 간의 사랑의 결속이 훨씬 견고해진다.다음 얘기는 용서와 동정에 관한 이솝 얘기다.어느 날 한 마리의 사자가 햇볕이 쨍쨍 쏘이는 숲속에서 산천이 떠나갈 정도로 드르릉드르릉 코를 골면서 곤히 잠자고 있었다.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동물의 왕 사자의 발을 밟고 지나갔다.곤히 잠자던 사자가 갑자기 깨었다.그리고 하얀 이빨을 보였다.생쥐는 사자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그 큰 사자가 벌벌 떨면서 울고 있는 생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찰나 생쥐는“사자님. 제발 저를 살려주셔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했다.“언젠가 저도 동물의 왕 사자님을 도와 드릴게요.”멋있고 웅장한 사자는 작은 생쥐의 말을 듣고 “너 같이 작은 생쥐 새끼가 나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너털웃음을 치고 비웃었다. 사실은 그 사자는 동정심도 많고 작은 짐승을 무척 사랑했다. 그 생쥐를 놓아 주었다.그 후 얼마 안 가서 그 사자가 그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친 그물에 옭혔다. 옭힌 그물에서 나와 도망치려고 그물을 끌고 당기고 전력을 다했으나 그물의 밧줄이 너무 단단해서 그물에서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었다.사자는 그 산의 초목이 다 떨일 수 있을 정도로 산천이 다 움직일 정도로 소리 내어 포호했다.그 작은 생쥐가 사자의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장소로 금방 뛰어갔다.“나의 은인 사자님.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요. 제가 살려 드리지요. 제가 밧줄을 쪼아 끊고 사자님께서 빠져나가시게 도와 드리지요. 생쥐는 작으나 날카로운 이로 밧줄을 쪼아 끊었다. 그물에서 빠져나온 사자에게 “사자님! 작다고 저를 비웃으셨지요. 제가 아무리 작아도 사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요. 보셔요. 사자님께서 저를 용서하고 동정해서 저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주신 것같이 저는 이제 그 은혜를 갚았습니다.”동물의 왕과 미미한 생쥐 사이에 생긴 동정과 용서에 관한 아름다운 이솝의 글이다.부부 간에 잘못된 언행에 대해 용서해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특히 자기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을 때는 용서해야 한다.자기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면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동정하고 용서해야 한다.우리는 늘 잘못하고 죄를 짓고 산다.우리는 항상 용서받고 사는 것과 같이 남을 용서해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잘못된 언행을 대화와 동정으로 용서해야 한다.잘못한 말로 잘못한 행동으로 부부가 싸우기도 하고 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수동적·공격적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상대자를 괴롭히거나 부부 간에 별거도 하고 이혼까지 한다.대화를 통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용서를 해 주지 않거나 용서를 받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은 죄의식을 지니고 살게 된다.부부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눈길 접촉사랑, 신체적 접촉사랑을 통해 조건 없이 진정한 사랑을 서로 하면서 부부는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살아야 한다.자녀들을 양육하는 동안 적절한 용서를 멋지게 해 주고 자녀들이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출처 및 참조문헌:Holly Bible불교성전논어The Book of Virtues, William J BennettLoving Each Other, Leo F. Buscaglia,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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